엔비디아의 포워드 PER(주가수익비율)이 16배입니다. 보잉 47배, 월마트 38배와 비교하면 놀라울 정도로 낮은 수치죠. 여기서 포워드 PER이란 향후 12개월 예상 순이익 대비 현재 주가의 배율을 의미하는데, 쉽게 말해 시장이 그 기업의 미래 성장을 얼마나 믿고 있는지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저는 이 숫자를 보고 솔직히 의아했습니다. AI 인프라를 장악한 기업이 전통 제조업보다 저평가받고 있다는 게 말이 되나 싶었거든요.
일반적으로 성장주는 높은 밸류에이션을 받는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시장이 공포에 휩싸이면 이런 공식은 무너집니다. 지금 미국과 이란의 긴장, 유가 급등으로 투자자들이 움츠러들면서 성장보다 안정에 프리미엄을 주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정작 정부와 기업의 돈은 여전히 AI 쪽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가격은 흔들려도 구조는 그대로라는 뜻이죠.

연산 수요와 밸류에이션의 괴리
젠슨 황은 "연산이 곧 매출"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문장이 핵심입니다. 과거 전기 인프라가 보급되자 냉장고와 세탁기 시장이 폭발했고, 초고속 인터넷이 깔리자 스트리밍과 SNS가 일상이 됐습니다. 지금은 AI 연산 능력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중입니다.
미국 정부 지출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보면 2000년 36%에서 팬데믹 때 47%까지 치솟았고, 지금도 41%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출처: 미국 재무부). 위기 때마다 정부는 지출을 늘렸고, 그 방향은 AI, 국방, 보안으로 집중되고 있습니다. M2 통화량(유통되는 현금과 예금의 총량)도 2022년 잠깐 줄었다가 다시 증가세입니다. 여기서 M2란 중앙은행이 발행한 돈이 시중에 얼마나 풀렸는지 보여주는 지표로, 통화량이 늘면 자산시장으로 돈이 흘러들어 갑니다.
제가 직접 확인한 데이터에서도 M2 증가 방향과 미국 증시 흐름은 거의 일치했습니다. 유동성이 늘수록 미래 현금흐름에 대한 할인율이 낮아지고, 성장주의 민감도는 커집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요? 성장주의 평균 포워드 PER이 소비재 수준까지 내려왔습니다. 연산 수요가 줄어서가 아니라, 시장이 전쟁 리스크에 과도하게 반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미국과 이란 충돌 직후 시장은 공포로 출발했지만, S&P 500과 나스닥은 플러스로 마감했습니다. 에너지나 방산보다 엔비디아와 소프트웨어 기업들이 오히려 반등했다는 건 의미심장합니다. 더 이상 내려갈 자리가 아니라는 신호로 읽혔습니다. 투자자 코스톨라니는 이런 경우를 '팻 콤플리(Fat Compli)'라고 불렀죠. 악재에도 주가가 버티면 그게 바닥 신호라는 겁니다.
엔비디아 실적 발표에서 데이터센터 매출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고, 수요는 여전히 공급을 앞서고 있습니다. 시장은 단기 변동성에 흔들리지만, 회사는 구조적 성장 스토리를 강조했습니다. 주요 애널리스트들은 엔비디아 목표가를 260~300달러로 제시하는데, 현재 182달러니까 최소 43% 상승 여력이 있는 셈입니다. 저는 7개월째 횡보 중인 지금이 오히려 기회라고 봅니다.
브로드컴도 주목할 만합니다. 단순 반도체 회사가 아니라 AI 네트워크와 맞춤형 칩(ASIC, Application-Specific Integrated Circuit)의 핵심 플레이어입니다. 여기서 ASIC이란 특정 용도에 최적화된 반도체를 의미하는데, 범용 칩보다 전력 효율과 성능이 뛰어납니다. 구글, 메타 같은 대형 고객사가 맞춤형 칩 수요를 늘리면서 브로드컴의 구조적 성장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현재 주가 318달러인데, 목표가는 380~415달러입니다. 엔비디아가 연산의 심장이라면, 브로드컴은 연결과 확장의 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보안과 전력, AI 시대의 숨은 수혜주
일반적으로 AI 투자라고 하면 엔비디아 같은 칩 기업만 떠올린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진짜 기회는 2차 수혜 영역에 있습니다. 연산이 늘어나면 보호해야 할 데이터도 늘어나고, 그만큼 전력 소비도 급증합니다. 연산 증가는 곧 보안과 전력 인프라 확대로 이어지는 구조입니다.
글로벌 사이버 공격 건수는 2023년 8억 5천만 건에서 2025년 14억 5천만 건으로 늘어날 전망입니다(출처: 사이버시큐리티 벤처스). 랜섬웨어(악성 코드로 데이터를 암호화한 뒤 돈을 요구하는 공격)부터 피싱, 클라우드 침입까지 공격 수법은 점점 정교해지고 있습니다. 사이버보안 시장은 2025년 2,500억 달러에서 2035년 9,100억 달러로 3배 이상 커질 예정입니다. AI와 클라우드가 확산될수록 보안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됩니다.
저는 사이버보안 기업 중 팔로알토네트웍스와 포티넷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팔로알토는 보안을 제품이 아니라 플랫폼으로 파는 기업입니다. 여러 보안 솔루션을 통합해 고객을 락인(Lock-in, 특정 플랫폼에 종속시키는 전략)시키고, 구독 매출을 빠르게 늘리고 있습니다. 최근 주가가 150달러까지 조정받았는데, 애널리스트들의 평균 목표가는 235달러입니다. AI 확산 속에서 통합 생태계를 구축하려는 기업이니만큼, 2차 수혜 구간에서 재평가받을 가능성이 큽니다.
포티넷은 네트워크 보안과 방화벽 시장에서 오랜 점유율을 유지해 온 기업입니다. 8월 실적 발표 후 주가가 100달러에서 70달러대로 급락했지만, 목표가는 92~130달러로 여전히 높습니다. 현금흐름이 안정적이고 밸류에이션이 낮아 보수적인 투자자에게 적합합니다. 저는 포티넷의 강점이 '지루한 안정성'에 있다고 봅니다. 화려하진 않지만, 연산이 늘어나는 한 꾸준히 수혜를 받을 기업이니까요.
연산이 늘어난다는 건 결국 더 많은 전력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데이터센터는 점점 높은 전력 밀도를 요구하고, AI 학습과 추론은 기존 산업보다 훨씬 많은 전기를 소비합니다. 엔비디아는 연산 수요 폭증을, 마이크로소프트와 메타는 데이터센터 확장을, 테슬라는 전력 인프라의 중요성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기업 CEO들은 이미 다음 병목을 알고 있다는 겁니다.
AI 전력 관련 상장 기업으로는 비스트라(전력 변환 장치), 버티브(데이터센터 냉각·전력 관리), 이튼(전력 분배 시스템) 등이 있습니다. 이미 주가가 많이 오른 종목도 있으니 조정 구간을 노려보는 게 좋겠습니다. 어차피 긴 호흡으로 성장할 산업이니까 급할 필요는 없습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일부 보고서에서 2028년 글로벌 지능 위기를 경고하고 있다는 겁니다. AI가 성공하면서 오히려 화이트칼라 일자리가 빠르게 대체되고, 소득 감소로 소비가 위축되며, 신용 경색으로 이어진다는 시나리오죠. S&P 500이 38% 급락하고 실업률이 10.2%까지 오를 거라는 극단적 전망도 담겨 있습니다. 저는 이 시나리오가 과도하다고 생각하지만,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비관적 시나리오와 낙관적 시나리오 모두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AI는 더 발전한다는 점입니다.
차이는 파급 효과입니다. 노동 소득은 압박받을 수 있지만, AI 인프라와 반도체, 소프트웨어 산업은 더 커질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노동 소득만 바라보기보다 자본 소득으로 균형을 맞춰야 합니다. 지금은 우리의 노동을 방어하기 위해 AI 투자라는 관점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투자자 스탠리 드러켄밀러는 완벽한 확신이 생긴 뒤 투자하는 게 아니라, 변화의 조짐이 보이면 먼저 들어가고 이후 계속 점검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제네릭(복제약) 회사 테바가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 전략으로 전환하는 걸 읽고 선제 투자했고, 결국 여섯 배 수익을 거뒀습니다. 현재 실적이 아니라 앞으로 달라질 인식을 산 겁니다. 저도 이 접근법에 동의합니다. 방향이 맞다면 비중을 점진적으로 늘려가는 게 정답입니다.
정리하면, 연산을 파는 기업(엔비디아, 브로드컴), 연산을 지키는 기업(팔로알토, 포티넷), 연산을 가능케 하는 기업(전력 인프라)이 세 축입니다. 정부 AI 투자와 빅테크 자본 지출(CapEx, Capital Expenditure)은 연산을 팔게 만들고, 보안은 그 연산을 지키는 유틸리티가 됩니다. 데이터센터가 늘어날수록 전력 인프라는 필수가 될 겁니다. 가격은 흔들려도 구조는 바뀌지 않았습니다.
미국과 이란 갈등이 격화되면서 시장은 다시 흔들리고 있습니다. 유가, 방산, 지정학 리스크 뉴스가 쏟아지고 있죠. 하지만 이런 상황일수록 우리는 방향을 다시 점검해야 합니다. 전쟁은 단기 변동성을 키우지만, 정부 지출, AI 투자, 전력 인프라 확대라는 큰 흐름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공포 속에서도 구조를 보는 것, 그게 우리가 집중해야 할 지점입니다. 3월 3일 클라우드스트라이크 실적, 4일 브로드컴 실적, 16일 엔비디아 GTC, 18일 FOMC 점도표 발표가 예정돼 있습니다. 저평가 성장주의 분기점이 될 수 있으니 꼭 챙겨보시길 바랍니다.